부동산 문제에 관해서 계급투표가 있었다는 여러 통계가 제시되고 있다. 재산세를 많이 내는 지역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많은 표가 나왔고, 특히 고가 아파트 소재 지역에서는 거의 몰표가 나왔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절반의 진실만 드러내는 통계이다. 저런 식의 계급투표가 있다는 것은 사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며, 이 번 선거만의 특징도 아니다. 손낙구씨가 14년 전에 '부동산 계급사회',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라는 매우 두꺼운 책에서 이를 거의 논증하다시피 했는데 진짜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민주당이 득표율에서 뒤졌다는 사실은 이 통계로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전국단위 서울 선거에서 국민의 힘에게 진 적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냥 단순 통계로만 보면 전국적으로 2019년도 주택보급율은 104.8%(서울96.0%)이고 집없는 세대는 43.7%(서울 51.4%)이다. 즉, 서울에는 반 이상이 집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고가 주택 소유자들은 윤석열씨에게 몰표를 주었다고 하더라도 서울의 집 없는 사람들은 누구를 찍었다는 말인가?
통계가 부족하여 알 수 없지만 그냥 기계적으로만 이해해도 민주당이 집없는 사람들의 지지만 압도적으로 받았어도 선거에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수현씨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민주당이 집을 가지면 보수화되기 때문에 일부러 집값을 올렸다는 윤석열씨의 주장은 매우 황당하기는 하지만 집 없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논리였던 것 같다. 이에 반해서 민주당은 왜 집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찍어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을 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수요를 엄청 통제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실제로는 임대사업자에게 박근혜 정부를 능가하는 엄청난 특혜를 주어 임대사업자가 아닌 사람들조차 집을 매입하여 임대사업자가 되는 기현상이 발생하였고 이는 집값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어느 정도 특혜였냐고 하면 2018년도의 약 10개월간은 임대사업자에게 투기지역에서 대출을 집 값의 80%까지 해주었다. 일반인들은 이미 대출이 다 막혔을 때였다. 종부세, 양도소득세는 물론 건보료까지 최대 80% 감경해주었다. (건보료를 깍아주는 산업은 주택임대사업이 유일하다. 주택임대사업이 무슨 삼성전자인가?)
이런 특혜를 주고 어떻게 부동산 값이 내려간다는 것이란 말인가. 특정 시점에서 이 정책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다 느꼈었던 것 같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가 이 문제를 지적하였고, 민주당에서도 홍익표, 강병원 의원 등이 이 문제를 지적하였다. 2021년 김진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부동산 특위에서 임대사업자 특혜를 철회하는 안이 포함되었었다. 그런데 최종 확정 직전에 이 내용은 다 빠지고 1주택자 종부세 인하안만 시행되게 된다. 이것은 무지의 소치가 아니다. 민주당 정권이 의식적 결단을 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유주택자를 대변하기로. 서울 시내 곳곳에 당의 지침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1주택자 종부세 인하가 민생개혁이라는 민주당 명의의 플랭카드가 걸렸다. 나는 이 시점에서 선거의 결과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나서 예의 황당무개한 공급공약이 경쟁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물론 공급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다 안다. 그것은 한 번에 늘릴 수 없다는 것을. 만약 용적율 500%로 하면 아마 그 지역은 햇빛도 들지 않는 대표적인 슬럼지역이 될 지도 모른다. 누가 그런 곳에 살고 싶어한다는 말인가. 다주택자들에게 천문학적 특혜를 안겨주는 임대사업자 정책을 철회 내지 수정하지 않으면 공급을 아무리 늘려 보았자 그 주택은 다 주택자의 수중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정말로 공급만이 문제였다면 왜 오세훈씨는 시장이 되자마자 대규모 재건축, 재개발 허가를 하지 않고, 박정희 정권 당시 도입된 가장 강력한 수요 억제책인 토지거래 허가제도를 대치동 등 주택 가격 급등지역에 도입했다는 말인가? 공급확대를 공약으로 당선된 시장이 취임하자 마자 한 것은 가장 강력한 수요억제책이었던 것이다.
그냥 민주당은 무주택자를 방치한 것이다. 주택은 누구 말대로 빵(!)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엄청난 고가이고 쉽게 구입할 수 없으며 단지 실수요목적만으로 사는 사람도 없다. 지난 수십년간의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영원히 집을 살 수 없는 계층은 상당히 넓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무주택자를 위한 모든 정책의 대전제는 집값이 낮게 유지되지 않으면 모든 권리도, 정책도 다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2020년 7월에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
“선유도역 10분 거리 8평 전세 2억 9천,
당산역 10분 거리 9평 전세 3억 2천,
망원동 9평 전세 3억 6천 9백”
2020. 7. 5. 방송, “구해줘 홈즈” 중에서"
그래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과 민주당을 믿는 정말로 선량한 시민들이 다수 존재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 강연에서도 대통령의 선의를 믿는 사람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그 후 시민들이 목도한 것은 이 정부의 주요 고위직들은 뒤에서 부동산을 구입하여 엄청난 이익을 올리거나 심지어 주요정책 결정권자들이 임대차 3법 시행일 직전이나 직후 대폭 임대료를 올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이 사건 보도 직전까지도 박영선씨는 오세훈씨를 앞서고 있었다.
아마 이재명 후보는 이런 점을 다 알고 있었던 것으로 나는 보고 있다. (이재명씨가 뭘 몰라서 이상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래서 더 독이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또한 임대사업자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래서 집 값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제 와서 임대사업자 특혜문제만을 해결하기는 것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보고 일단은 양도소득세를 내려서 다주택자들이 집을 빨리 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 다주택자에게 또 이득만을 안겨주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사실 정책은 모든 좋은 것을 실행할 방법은 없고,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으로 주택 수요를 억제하면 하는 것이지 그 중에서 투기수요만 억제할 방법은 없는 것이고, 주택가격을 빨리 낮추려면 다주택자에게 투기이익을 환수하는 양도소득세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장동이 있었다. 이재명씨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감세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얻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민주당은 1990년대 민자당이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의석수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지위도 말이다. 본인들은 억울할 수 있겠지만 모든 정책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주택자들은 자신들의 정당을 포기하지 않았고, 무주택자는 누구도 대변하지 않게 되었다. 임대차 3법으로 면피하려고 하지 말라. 망원동 9평 전세가 3억 6천이 되었는데 임대차 3법은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씨일 뿐이다.
누구를 탓하리. 서민대중의 사회경제적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 사회는 이제 지엽말단적인 갈등만이 쟁점이 되어 가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미국의 큰 영향력 하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나라에서 정치도 미국처럼 가는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죽산이 처형되고 나서부터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ㅎㅎ
김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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