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 유보통합
유보통합(유치원, 보육기관 통합) 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을 처음 만드는 시기라면 그렇게 만들자고 하겠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무의 상태에서 최고나 최적의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의 유보 시스템은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태다. 취학 전 기관 이용 아동 비율의 95%로 OECD 평균보다 한참 높다. 기관들 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누리과정 실시 이후 나름 어느 정도 수준의 표준화도 이룬 상태다. 문제가 많긴 하지만 작동하지 않거나 불평등의 근원이 되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보통합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극히 어려운 정치적 과업이다. 성공하더라도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들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사회적 관심과 자원이 집중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후퇴하고 양보되고 소외되고 간과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그게 뭐가 될지 모르지만).
문제는 그럴 가치가 있냐는 것이다. 가족배경에 따른 아이들의 발달 격차가 이미 3세면 드러나서 자리 잡는다(유보기관 가기 전이다). 내일 모레 교육사회학회에서 0-10세 사이 격차가 벌어지는 추세를 분석한 연구를 발표하는데 실제로 3세면 드러나고 이후 좀 벌어지다 초등학교 이후엔 격차 증가가 나타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격차가 발생하고 벌어지는 것이 누구는 유치원에 가고, 누구는 영유에 가고, 누구는 어린이집에 가서 그런 것이냐는 것이다. 유보통합으로 교육 불평등을 잡겠다는 것은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격차에 다른 종류의 기관 출석이 설명하는 부분은 거의 미미하다. 가족배경에 따라 아이가 다른 기관에 가는 양상은 뚜렷하지만 그 자체가 차이에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럼 격차는 어디서 나는가? 기관과 관계없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이후 가정 환경의 차이에 거의 기인한다. 아이들의 학습에 조금 더 혹은 덜 친화적인 여건이 주어지는지 그런 주거 및 지역 환경이 갖춰져 있는지다. 이런 여건의 차이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극복하게 할지에 대한 논의와 고민들이 자칫하면 유보통합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어갈 수 있다. 그게 더 큰 문제가 된다.
한 가지 더 간과되는 것은 아주 어린 3세 경부터 이미 격차가 드러난다고 해서 그것을 결정적론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주요한 사회경제적, 인구학적 변인들, 기관 및 지역 특성들을 다 고려해도 아이들 인지적 발달 지표의 80% 이상은 설명되지 않고 남아있다. 즉, 아주 어릴 때 앞서가지 않으면 혹은 뒤쳐져 버린다면 더 이상 뒤집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얼마전 읽었던 인터뷰 기사에서 실제 국가교육위원회 인사가 유보통합 아젠다의 정당성을 말하며 한 이야기다)은 사실도 아니고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공포와 위화감만 조성하고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킨다.
요약하면 같은 조건이라면 유보통합 시스템이 낫겠지만 유보통합을 한다고 교육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유보통합 개혁에 피할 수 없이 따라올 비용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국공립대학네트워크로 지방에 서울대 10개 만들어서 대학 서열화 철폐하고 학벌사회 극복해서 사회 불평등 해결하겠다는 방안에 대해서도 대체로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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