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법칙(LG’s Law)이 가진 과학성에 관하여
1. 머니의 켄
만화 ‘머니의 켄’에서 주인공 켄은 어느 정도 사업을 키우자 기업공개를 고민한다. 기업을 공개하면 외부에서 자금을 유치해 기업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다.
그러나 기업공개의 단점도 있다. 주식시장은 일반 투자가들만이 아니라, 온갖 잡귀들이 들끓는 세계다. 주주들은 항상 감시하면서 많은 것을 요구한다. 더는 기업이 창업주 개인 상점이 아니게 되고 만다는 게 기업공개를 자문하는 컨설턴트의 설명이다.
이렇듯 (1) ‘상장해 자금을 유치하는 것’과 (2)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기업가라면 어느 순간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2. 통제력과 자본유치 기능의 분리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두 가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자본시장이 세상에 있다. 바로 대한민국 자본시장이다.
나는 여러 차례 지주회사, 자회사, 손자회사로 내려가면서 기업에 대한 평가가 나아지고, 반대로 손자회사, 자회사, 지주회사로 올라가면서 할인의 정도가 심해지는 현상을 설명했다. 이른바 (내가 이름 붙인) LG의 법칙(LG’s Law)이다.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은 기업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할 수 있다. 지주회사는 통제력 유지가 목적이고, 사업회사는 자금유치가 목적이다.
지주회사는 애초 자금유치가 목적이 아니므로 일반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필요가 없다. 주주가치 제고도 필요없다. 통제력만 유지된다면 차라리 주가가 낮은 게 상속, 증여에 유리하다. 주주환원은 적은 편이 낫다. 물론 간혹 대주주 일가가 돈이 필요할 때는 넉넉히 배당한다. 자사주를 매입만 하고 소각을 하지 않는 것도 지배력 유지를 위해 그게 좋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는 보통 현금, 부동산이나 알짜 비상장 자회사를 보유하지만 되도록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사익추구도 강하게 일어난다. 사익추구로 얻은 이익으로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거나 증여받아 통제력을 더욱 강화한다. 사익추구를 하면 주가가 내려간다. 저평가는 상속, 증여를 위해 좋은 일이다.
지주회사는 기업 거버넌스에서 최상위에 위치하지만, 그렇다고 최강은 아니다. 승계를 위해 설립한 가족지분이 높은 기업에는 결코 대적할 수 없다. 두 기업이 합병할 때면 항상 지주회사는 디스카운트되고, 가족지분이 높은 기업이 고평가된다.
자회사, 손자회사는 자본시장에서 돈을 벌어오는 게 할 일이다. 최대한 예쁘게 보이기 위해 치장하며, 주식을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인적분할이 성행할 때는 최대한 사업회사에 매력적인 사업을 몰아주고 지주회사는 부동산, 현금, 성장성은 없지만 실속있는 비상장 자회사를 챙겼다.
(동화책 톤으로) 오랜 세월이 흘러 웬만한 기업이 한 차례 인적분할을 다 하게 되자 자본시장의 늑대들은 돈을 벌기 위한 다른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지요. “그래! 다시 한번 분할하면 되겠다.”라고 늑대들은 생각했습니다.
근래 자회사에서 유망해 보이는 사업을 떼어 내 손자회사를 만드는 물적분할을 하는 시도가 부쩍 늘어난 이유다.
3. 돈을 벌어오는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자회사, 손자회사의 운명
만약 사업회사(자회사, 손자회사)가 뜻하지 않게 시장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다면 어떨까? 사업회사는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유치하는 게 원래의 기능이므로, 용도에 맞지 않게 지주회사(또는 모회사)보다 낮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런 사업회사가 있다면 더는 쓸모가 없다. 지주회사(모회사)에 합병되어 토사구팽(?), 아니 소멸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제지와 해성산업, 아트라스BX와 한국앤컴퍼니, 엔에스쇼핑과 하림지주, 부산가스와 SK E&S,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와 한화갤러리아 등 다수의 사례에서 모기업보다 저평가된 자회사의 미래가 어떠한지를 잘 보아왔다.
나름 전략을 궁리해 만년 저평가인 지주회사를 피하고, 사업회사(자회사, 손자회사) 중에서 저평가된 기업만을 골라 투자하는 가치투자자가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광주신세계의 운명이 우려되는 이유다.
4. 자본시장 필연의 법칙
태양계에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등이 현재의 위치에서 현재의 속도로 도는 것은, 그 뒤에 물리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도는 속도가 달랐다면 태양의 중력에 의해 빨려 들어가거나 원심력에 의해 튕겨 나갔을 것이다.
현재의 속도에서 위치가 달랐어도 마찬가지다. 제 위치를 찾을 때까지 빨려 들어가거나 튕겨 나갔을 것이다.
지주회사, 자회사, 손자회사의 순으로 평가가 높아지는 LG의 법칙은 지주회사가 고작 30%의 지분만 가지고 다단계로 기업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자본시장에 상장되어 일반투자자들의 돈을 유치하는 역할을 하는 자회사, 손자회사의 상장을 허용한 대한민국 자본시장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심혜섭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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