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진님 페북)
파월의 선택
1.
연준의 금리 인상이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과연 연준과 파월은 몰랐을까?
2018년에 파월은 중립금리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파월은 그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세상 일을 음모론으로만 해석한다면 골방의 대책 없는 음모론자로 인생을 마감할 것이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과 말만 믿고 살면 항상 이용만 당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연준의장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 경제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도록 운용해야 할 엄청난 의무도 어깨에 지고 있다.
연준의장의 말을 항상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전쟁터에서 적장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정직한 전략으로 전쟁을 치루는 장수와 뭐가 다를까?
2.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1951년에 있었던 인플레이션은 지금보다 더 심각했었다.
세계2차대전으로 공장은 파괴되었고, 화물을 운송할 배도 파괴되었고, 일할 사람도 수천만명이 죽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당혹감이 과연 71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보다 작았을까?
당시에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온갖 조롱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시간이 지나자 인플레이션은 안정화되었다. 금리도 한 차례 인상에 그쳤고 인플레이션 피크로 부터 2년이 지나서야 경기 침체가 찾아왔다. (1951년 5월 peak CPI 9.59, 경기 침체 1953년 8월 시작됐다. 지금이 1950년대 초 처럼 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3.
버냉키의 책,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한다"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1950년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아마도 더 거칠었던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심각했던 한국전쟁에다, 경기침체까지 두 차례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민간 부문의 경제 내 역할이 회복됨에 따라 기본적으로 1950년대는 생산적이었던 번영의 십년이었습니다."
1950년 한국 전쟁을 보며 느꼈던 당시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가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느끼는 우리의 걱정과 우려보다 과연 작았을까? 세계2차대전 이후 벌어진 625는 세계3차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경기침체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부문의 역할이 회복되기 시작한 생산적이었고 번영의 십년이라고 버냉키는 말한다.
4.
심장이 멈춰버린 사람이 응급실에 들어오면 응급실 의사는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심장마사지의 강도를 높인다. 만약 이때 충격이 밋밋하면 그 사람은 그대로 죽고 만다.
멀쩡한 사람에게 그런 충격을 가하는 의사가 있다면 미친 의사지만 심장이 멈춘 사람에게는 그런 충격이 필수적인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때 풀었던 돈의 양과 GDP의 비율을 보면, 1929년 대공황, 세계2차대전 때 풀었던 돈의 양과 GDP의 비율과 비교할 만하다.
지난 10여 년 간 연준이 느꼈던 압박감은 1930~40년대의 경제를 바라보는 심정과 비슷했을 거라 생각한다. 응급실에 들어온 심정지 환자를 보는 의사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5.
현재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파월의 생각과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마치 응급실 의사와 내과 의사의 생각 차 아닐까? 파월은 경제를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경제를 내과에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은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측을 하는 글이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1~2년 안에 경기 침체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을 하는 것도 아니다. 1950년대를 봐도 1953년, 1957년 두 차례의 경제 침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 버냉키는 민간의 역할이 회복된, 생산적이고 번영의 10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연준이 금리를 어떻게 올릴지 그 속도와 횟수에 대해 예상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파월이 왜 금리인상의 시기를 될 수 있으면 늦추려고 하고 있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6.
파월은 지금 1960년대와 1990년대와 같이 비교적 경제지표가 안정적인, 평화로운 시기에 연준의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1950년대와 같이 매우 울퉁불퉁한 시기에 연준의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2021년 부터 불거지고 있는 현재의 인플레이션 과정에 파월이 아주 적절하게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경제를 내과에 진료 받으러 온 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파월과 연준의 금리인상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제가 응급실 심정지 환자와 같은 상태였다고 생각한다면, 민간의 'Animal Spirit'을 일깨우기 위해 금리 인상의 시기를 늦춘 파월의 결정은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에게 강한 심장 충격을 가한 것과 같이 장기적으로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처럼 장기 불황이 좋은가?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좋은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상황이 훨씬 더 좋다 라고 말할 것이다.
경제가 이제 막 꿈틀거리려고 하는데 갑작스런 금리인상으로 그 불씨를 꺼트려 일본식 불황을 볼 것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을 감내하면서 불씨를 살릴 것인가 사이에서 파월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움직인다.
7.
만약 2080년 어느 날, 어떤 연준의장이 회고록을 써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파월의 과감한 행동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아마도 더 거칠었던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심각했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다, 경기침체까지 두 차례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코비드19 팬데믹이 종료된 이후 민간 부문의 경제 내 역할이 회복됨에 따라 기본적으로 2020년대는 생산적이었던 번영의 십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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